트라우마와 C-PTSD 차이와 회복방법, 마음치유에 꼭 필요한 이야기의 힘


트라우마의 정확한 의미와 흔한 오해

요즘 “그건 내 트라우마야”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심리학에서 말하는 트라우마(trauma) 는 단순히 힘들거나 속상했던 일을 뜻하지 않습니다. 트라우마는 생명을 위협받거나 극심한 공포와 충격을 느낀 사건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큰 교통사고, 폭력, 성폭력, 전쟁, 자연재해 등이 해당됩니다.

단순히 기분이 나빴던 경험과는 다르며, 뇌와 마음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심각한 충격이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단어가 일상에서 너무 가볍게 사용되다 보니, 실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상처가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트라우마는 한 번의 큰 충격으로도 생기지만, 더 큰 문제는 오랜 시간 반복된 외상입니다. 지속적인 학대, 무시, 따돌림, 혹은 위협적인 상황이 반복될 경우, 마음에 더 깊은 상처가 남게 되고, 이로 인해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C-PTSD) 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C-PTSD의 주요 증상과 마음의 변화

C-PTSD는 단순한 외상 경험보다 더 복잡한 형태의 정신적 고통을 말합니다. 반복되고 오랜 시간 지속된 외상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증상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감정 조절의 어려움입니다. 평소 같으면 넘길 수 있는 일에도 갑자기 분노가 폭발하거나, 반대로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무기력해질 수 있습니다. 마음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감정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 인식의 왜곡입니다. “나는 원래 문제가 있는 사람이야”, “이런 일이 생긴 건 내 잘못이야”라는 식의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습니다. 잘못은 외부에 있는데도, 고통받는 내가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세 번째는 사람에 대한 불신입니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다시는 누구도 믿지 않으려는 마음이 생기고, 결국 혼자가 됩니다. 관계를 피하고 마음의 문을 닫게 되죠.

마지막으로는 세상에 대한 절망감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고, 잘못한 사람은 벌을 받지 않는 것 같아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껴집니다. 그 결과,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게 되고, 변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됩니다.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의 치유 효과

이처럼 깊이 다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이야기’입니다. 내가 겪은 일을 누군가에게 말하거나, 글로 써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상처는 조금씩 회복됩니다.

그 이유는 과학적으로도 설명됩니다. 우리의 기억은 뇌의 ‘해마(hippocampus)’라는 부위에 저장되는데, 입 밖으로 기억을 꺼내 이야기할 때마다 이 기억은 다시 정리되고 재구성됩니다. 특히 트라우마 기억은 조각나거나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정리하면 감정이 안정되고 불안도 줄어듭니다.

처음에는 말로 하기 어려운 기억일 수 있지만, 글로 써보거나 그림을 그려 표현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야기하는 순간, 기억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괴물이 아니라 ‘내가 이겨낸 과거의 일’이 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해주세요. “그래도 나는 살아남았다.” 이 한마디는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강력한 응원입니다.


자기이야기 쓰기로 마음 정리하는 방법

자신의 트라우마를 말로 정리하기 어렵다면, 차근차근 자기 이야기 쓰기를 시도해보세요. 쓰는 과정 자체가 치료가 될 수 있습니다.

첫째, 내가 겪었던 일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떠올리는 거예요. 마치 한 편의 이야기를 쓰듯, 그 사건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상황으로 흘러갔는지 자세히 적어보는 겁니다. 아침에 일어난 순간부터, 그 일이 벌어진 장면, 그리고 그날 하루가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지를 하나씩 생각해보세요. 처음에는 기억이 엉켜 있을 수 있지만, 한 줄씩 쓰다 보면 흐릿했던 장면들이 점점 또렷해집니다. 이 과정을 통해, 혼란스러웠던 기억을 질서 있게 정리할 수 있고, 내가 실제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둘째, 그 당시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고, 무슨 생각을 했으며,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솔직하게 적어보세요. “나는 정말 무서웠다”, “화가 났지만 말할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없던 척했다” 등 어떤 감정이든 괜찮습니다. 슬펐던 감정, 억울했던 순간, 또는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던 말도 좋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속마음까지 담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작업은 내 마음속에 묻혀 있던 진짜 감정을 끄집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감정은 말로 표현될 때 비로소 정리되기 시작하니까요.

셋째, 그 사건이나 시간들이 왜 나를 힘들게 했는지를 되짚어보세요. 어떤 점이 가장 고통스러웠는지, 어떤 상황에서 가장 많이 지쳤는지를 스스로 물어보는 거예요. 그리고 그 힘든 시간들을 어떻게 견뎠는지도 꼭 함께 적어보세요. “그래도 수업을 빠지지 않았다”, “친구에게 털어놓으며 버텼다”, “하루하루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다”는 식으로요.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단지 상처받은 존재가 아니라 그 순간을 이겨낸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됩니다.

넷째, 그 힘든 시간 속에서도 나를 지켜준 것들을 떠올려보세요. 나를 다독여준 사람, 위로가 되었던 말, 혼자 울며 들었던 노래, 혹은 단순히 시간을 견딘 의지 자체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의 작은 말 한마디가 힘이 됐다”,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적어보세요. 이렇게 나를 지켜낸 것들을 되짚는 것은 상처 속에서 희망의 흔적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그 기억은 지금의 나를 다시 일으키는 소중한 자원이 됩니다.

다섯째, 글의 마지막에는 꼭 이렇게 적어보세요. “그 모든 걸 지나서,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이 문장은 단순한 마침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보내는 격려와 증거입니다. 나는 그 시간을 견뎌냈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입니다. 이 문장을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큰 울림이 생기고, 상처를 마주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 다섯 단계는 단순한 글쓰기 활동이 아니라, 자기이해와 감정 회복을 위한 마음 치유의 과정입니다. 작고 사소한 기억이라도 괜찮습니다. 그 안에는 분명히 ‘살아낸 나’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는 것만으로도 치유는 시작됩니다.


전문가의 도움과 사회적 지원 받기

만약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렵다면, 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세요. 심리상담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국가 트라우마 센터 등 다양한 기관이 존재합니다.

요즘은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전화나 온라인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도 많아졌습니다. 특히 복합 외상(C-PTSD)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치료 방법도 다양합니다. EMDR, 내러티브 노출 치료(NET), 인지행동치료(CBT) 등은 국내외에서 효과가 입증된 방법입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용기 있는 선택입니다. 세상에는 분명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돕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래는 실제 도움이 되는 사이트들입니다.


꼭 기억해 주세요. 지금까지 당신이 살아온 모든 시간은 헛되지 않았고, 당신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충분히 소중한 가치입니다.


PTSD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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